독백-청년작가 백월의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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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일 되면 엄청 뜯어 먹을 거니까 각오해.”
“시른데.”
초하의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집중했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반쯤 걸었을 때 뒤에서 울먹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 말 없이 걸으니 내가 화난 줄 알고 나의 생일에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는 초하의 모든 항변과 사과를 무시하니 이내 초하는 눈물을 짜내기 시작한 것이다. 백월야의 기억에 따르면 이런 일이 자주 있었다. 그럴 때마다 초하가 하는 말이 있었다.
“너 진짜 화나면 다른 사람 같아서 무서워!”
초하의 말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눈물을 흘리는 초하를 보고는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하아. 알았어. 대신 비싼 거 먹을 거야.”
“용서해 주는 거야?”
“응.”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니 초하는 이내 언제 울었냐는 얼굴을 하며 환하게 웃었다. 정말 어릴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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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니 어느새 시계는 밤 열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항상 초하랑 놀다 보면 집에 상당히 늦게 들어오는 느낌이다. 부모님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부모님이라 해도 백월야에게는 엄마밖에 없었다. 그리고 백월야의 엄마는 한 회사의 이사였기에 집에 상당히 늦게 들어왔다.
나의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내려두고 교복을 벗어 옷걸이에 걸어두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행동에 흠칫했지만 지금을 부정해봤자 나는 백월야이다. 백월야의 기억이 있고, 백월야의 행동을, 습관을 가지고 있고, 백월야의 입맛을 가지고 있는 백월야이다. 그리고 또 다른 무언가.
나는 생각들에 지쳐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침대에 누워 방 천장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풍경. 다시 침대에서 일어나 방 한쪽 구석에 있는 전신 거울로 향한다. 기억 속의 백월야가 눈앞에 나타났다. 새하얀 피부에 그에 상반되는 새까만 머리카락 그것과 같이 깊은 밤을 품은 듯한 까만 눈동자. 얼굴은 꽤 반반했다. 어디 가도 안 꿀릴 정도.
“그게 뭐 대순가. 어차피 내 얼굴도 아닌데... 아니 내 얼굴 맞나?”
머릿속이 뒤엉켜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다시 침대로 가 얼굴을 베개에 처박고 생각에 잠겼다.
저 창밖에 펼쳐져 있는 검은 안개가 모두 걷히고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안개가 없으면 이 세계는 현실로서 고정이 되는 걸까. 아니 애초에 이 세계가 소설 속이 맞는지부터 알아야 하는 것인가?
돌아누워 다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나의 기억은 여전하다. 백월야의 기억. 그리고 이전에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보았던? 느꼈던 그 공허했던 공간의 기억이 합쳐져 있다. 분명 나는 백월야이다. 그러면서 백월야가 아니다?
“미치겠네.”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침대에서 다시 일어나 책상 앞 의자에 걸려있는 수건을 들고 책상 옆에 있는 수납장에서 속옷을 챙기고 화장실로 향했다. 샤워기를 틀고 몸을 적시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백월야. 과연 너는 나인가 아니면 너라는 타인인가. 나는 너의 몸을 빌리고 있는 건가 아니면 그저 그렇다고 생각하는 건가.
너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인가.
너는 백월야.
나는 백월야.
우리는 백월야.
우리? 과연 우리가 맞는가.
우리일까.
너일까.
나일까.
독백을 읊으면 읊을수록, 생각하면 할수록 상념의 바다가 더욱 깊어진다. 어느새 나는 심해 속에 있었다. 심해의 어둠이 나를 집어삼킨다. 이 느낌은 처음 그때와 같다. 아니 같으면서 조금 달랐다. 나의 머릿속 글씨가 이전보다 더욱 뚜렷하다. 글씨가 형태를 가지고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심해의 어둠 속에 하얀 글씨들이, 지금 내가 읊는 독백의 글씨가 심해 속으로 가라앉을수록 더욱 선명해진다.
“응. 소설 맞네. 분명 소설이야. 그럼 나는 이 소설의 무엇일까.”
나의 중얼거림이 심해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미묘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마치 저 어둠 너머에 벽이 있는 것같이 메아리가 여러 번 퍼지며 울렸다.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 그 말은 상념의 바닷속 어두운 심해에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뿐 생각으로 읊는 독백과 같이 하얀 글씨로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거 진짜 보면 볼수록 묘하네. 내가 생각하면서 머릿속에서 혼잣말하는 게 글씨가 돼서 눈으로 보이는 게.”
이번에 한 말 역시 묘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고 역시나 글씨가 되지는 않았다. 되돌아 와서 다시 울려 퍼지는 메아리를 들으며 나는 이만 생각을 멈추었다.
그제서야 나는 짧고 굵은 생각을 마치고 눈을 떴다. 어느새 나는 젖은 머리를 드라이기로 말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분명 나의 의식은 깊은 심해 속에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 미끄러운 화장실에서 안전하게 씻고 나와서 어떻게 제대로 깔끔하게 옷을 입고 어떻게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있는가. 나는 어떻게 의식도 없이 사고 한 번 없이 움직일 수 있었던 걸까. 당장 생각나는 답은 한 가지였다. 하지만 이 답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겠지.
“백월야.”
나는 나직하게 나를, 나의 몸을 불렀다. 하지만 어떤 반응도 없었다. 그저 무의식적으로 몸에 배어 있는 습관대로 행동한 걸까. 정말 그럴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난이도가 꽤 있는 행동들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생겨나는 의구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 의구심이 사실인지도 확인할 수 없는 이 상황이 정말 정신병 걸릴 것만 같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정신병에 걸린 걸 수도.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털어내고 드라이기로 마저 머리를 말렸다. 머리를 다 말리고 나서는 침대로 가서 미리 충전기를 꽂아 두었던 핸드폰을 들어 올린다. 그대로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고 핸드폰의 전원을 켰다. 핸드폰을 켜니 화면에 초하의 문자가 여러 개 와있었고 엄마에게서 온 문자 또한 한 개 있었다. 먼저 엄마의 문자를 확인했다. 이번에도 어제와 같은 말이 적혀있었다. ‘오늘도 늦게 들어가니 먼저 자.’ 이 문자 메시지가 복사 붙여넣기를 한 듯 위로 줄줄이 나열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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