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청년작가 백월의 이야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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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기자 작성일 22-03-31 15:35 조회 10,067본문
“오늘 엄마가 수박화채 해 먹는다고 이모하고 같이 오래.”
“수박화채!? 사이다도 넣는 거야?”
“당연하지!”
“좋아! 빨리 가자!” 둘은 방금 전 세 명이 사라진 안개 속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똑같이 사라졌다. 나는 안개 쪽으로 발을 옮겼다.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안개 쪽으로 다가가니 안개가 서서히 걷혔다. 잠시 멈춰서 뒤를 돌아보니 놀이터는 어느새 안개 속으로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안개 속에서 교복을 입은 백월야와 초하가 걸어 나왔다. 둘은 방금과 같이 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내일 엄마가 계곡 놀러 가자고 했는데 같이 갈 거야?”
초하의 말에 백월야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 그럼 말해둘게 짐 싸놔 이모랑 같이.”
백월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춘기인지 이전과는 다르게 약간은 서먹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둘은 여전히 꼭 붙어 다녔다. 정말 사이가 좋았다. 중학생인 둘을 따라 걸었다.
안개는 현재 나의 반경 십 미터 정도 밖에 있었으며 그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여름 방학 동안에는 뭐할 거야?”
초하의 말에 나와 백월야는 동시에 고개를 돌려 초하를 바라보았다. 이후 백월야는 바로 다시 앞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집에서 게임 할 거 같은데. 다른 애들은 다 피시방 갈 테니까 따로 어디 놀러 가지도 않을 것 같고.”
“맨날 게임만 하지 말고 나랑도 놀아 줘야지.”
백월야는 귀찮다는 얼굴을 하며 말했다.
“여름이라서 어디 나가기는 싫으니까 집으로 놀러 와.”
백월야의 말에 초하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삐졌군. 그렇게 생각을 하며 나는 둘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다시 앞을 보니 어느새 백월야와 초하가 사는 아파트단지의 정문에 다 와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그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안개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단지 안으로 사라지는 둘의 뒷모습을 보며 어쩐지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의 추억도 아닌데.
나의 기억도 아닌데.
나의 마음도 아닌데.
백월야 너의 것인데 말이야.
“이젠 너야.”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지금의 백월야가 서 있었다.
“그리고 나이기도 하고. 우리는 백월야가 맞아.”
“하지만 나는 너의 기억만 가지고 있지, 그 무엇도 너라고 할 수 없어. 성격도, 생각도, 행동도. 그런데 어째서 내가 너라고 할 수 있는 거야?”
나의 말에 백월야가 옅은 슬픔이 묻어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만들어졌고. 그렇게 정해졌으니까.”
“그게 무슨ㅁ-”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나의 앞에 있던 백월야는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가 보는 세계를 가리고 있는 검은 안개처럼 새까만 연기가 되어 하얀 안개 위에서 먹물처럼 퍼져나가다가 색이 옅어지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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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어나니 어느새 오전 열 시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시야 한구석에는 방 한쪽에 쭈그리고 있는 초하가 보였다.
“왜 거기서 그러고 있어.”
나의 말에 초하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집에 들어가서도 계속 울었는지 초하의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왜 이렇게 늦게 일어나?”
나는 초하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반문했다.
“왜 여기 있어?”
“어제 하던 얘기마저 해야지.”
초하의 말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 뭐. 일단은 내가 백월야가 맞나봐. 내가 백월야고 백월야가 나이고”
나의 말에 초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월야랑 얼굴만 똑같지 완전 다른데.”
“그 백월야가 직접 말한 거니까. 믿을 수밖에.”
“직접 말했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꿈속에서 백월야의 기억을 봤어. 그리고 잠에서 깨기 바로 전에 백월야 본인이 나에게 말했어. 이젠 내가 백월야라고.”
“그럼 월야는 사라진 게 아니네?”
나는 방문을 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밥은 먹었어?”
“아니.”
초하의 말을 듣고 나는 부엌으로 가서 밥솥을 확인했다. 밥솥을 열어보니 엄마가 해두고 간 밥이 뜨거운 수증기를 피어 올렸다. 두 명이서 먹기에 충분히 먹고 남을 양이었다. 다시 밥솥 뚜껑을 닫고 냉장고 문을 열고 치킨너겟을 꺼내 가스레인지 불을 켰다. 대충 프라이펜을 올려두고 방으로 가서 여전히 쭈그리고 있는 초하를 끌고 나와 식탁에 앉혔다.
치킨너겟을 다 굽고 세팅을 하려니 식탁에 엎드려서 자고 있는 초하가 보였다. 그래서 내가 먹을 밥만 퍼놓고 초하 분의 치킨너겟은 따로 담아 식탁 한구석에 두고 초하를 들어 올려 다시 방으로 가 침대에 눕히고 나와 아침이기에는 늦고 점심이라고 하기에는 빠른 첫 끼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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